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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덕의 증거자
일생을 통해 말과 행동으로 믿음·희망·사랑의 내적 거룩함 증언

 
▲ 여름 집무실에 있는 카스텔간돌포에서 기도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연도 미상).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교황으로서 이룩한 업적 때무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보여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 때문이다. [CNS]
 

【바티칸시티=CNS】 교회 관리들이 계속 강조하고 있듯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되는 것은 교황으로서 업적 때문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그리스도교 덕을 실천한 방법 때문이다.

 바티칸의 시성 관련 전문가들이 증인들을 인터뷰했을 때 조사한 핵심은 업적이 아니라 성덕이었다. 그렇다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성적 특징은 무엇일까. 교황이 평생 실천한 것은 기도와 신심, 강한 사제 소명 의식,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신앙에 의지함 같은 영성적 가치들이었다. 이런 가치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기 이전이나 교황이 된 이후에도 한결같이 일생을 통해 이룩한 핵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카롤 보이티와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시험을 겪었다.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3년 후에는 하나뿐인 형을 성홍열로 잃었다. 20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12시간을 꼬박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슬픔을 삼켰다고 친구들은 전했다.

 사제 성소 또한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연극 배우 생활과 채석장 인부 생활을 하고, 시를 쓰고 유다인들을 피신시키는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특히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적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해 동안에 형성된 것이다.

 매일 미사에 참례한 카롤 보이티와는 마리아 신심을 키웠고 열심히 기도하고 묵상했다. 조국 폴란드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보이티와는 얀 티라노브스키라는 평신도가 이끄는 로사리오 기도 모임에 매주 참석했다. 보이티와는 나중에 멘토가 된 티라노브스키를 통해 16세기 스페인의 대신비가 십자가의 요한을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비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된 보이티와는 수도 생활에 매료돼 두 차례나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 청원을 했지만 "당신은 더 큰 일을 하게 돼 있다"는 말로 거절을 당했다.

 사제품을 받고 나서는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았고, 청년 사목은 일생의 관심사가 됐다.

 보이티와 신부는 1958년 38살에 보좌주교가 됐다. 폴란드 역사상 최연소 주교였다. 6년 후 크라쿠프 대주교가 된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및 사목헌장 같은 문헌의 초안 작성을 도왔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첫 번째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은 교황직에 대해 "교황직은 위대한 일이지만 더욱 엄청난 십자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주 후 교황직의 '십자가'는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 자신에게 돌아왔다.

 마리아 신심이 각별했던 교황은 1981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축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모하메드 알리 아그차의 총탄에 쓰러졌다. 중상이었고 회복은 더뎠다. 교황은 나중에 자신의 치유를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돌렸다. 그리고 몇 년 후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모성지를 방문,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탄을 파티마 성모상 관에 두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 기도 생활은 치열했다. 교황은 아침 미사를 드릴 때면 깊이 묵상에 잠겨 있었고, 몇 시간씩 성체조배와 관상기도에 몰두하기도 했다. 로사리오를 즐겨 바친 교황은 마침내 빛의 신비를 추가했다.

 교황은 또한 참회와 고행도 진지하게 실천했다. 밤새도록 맨바닥에 두 팔을 펼치고 누워 지냈으며, 사제나 주교를 서품하기 전에는 단식을 했고 자기 몸을 때리는 편태 같은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으로, 교회는 모델이 되는 교황이 아니라 모델이 되는 그리스도 신앙인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 세상에 내적 거룩함을 증언한 그는 말과 모범으로 사람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실천하도록 자극했다.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11.04.28]